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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황제음부경

02. 구겸지 (중국 도교 사상가) [寇謙之]

by 단청의 무늬 2023.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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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구겸지 (중국 도교 사상가) [寇謙之]

중국도교사상가, 철학자 ?~448.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北魏)의 도가(道家) 사상가로서 도교 제식(祭式)의 여러 가지 의례와 의식을 정리했으며 도가이론을 재정립했다. 그가 끼친 영향은 대단해서 도교를 북위(386~534/535)의 국교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일 때문에 도교는 오랜 기간 종파들 사이에 피비린내나는 정치적 투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구겸지는 원래 도교의 의사 겸 위생학자였다. 그러나 415년 한 선인(仙人)이 나타나 도교의 위대한 창시자인 장릉(張陵34(?)~156)이 죽은 뒤 교단이 잘못된 교리 때문에 타락했다고 말해주는 환상을 보았다.

 

구겸지는 장릉의 뒤를 이어 천사(天師)의 직위에 올랐으며 환상을 통해 도교의식의 무절제함을 없애도록 지시를 받아 흥청거리는 의식과 돈을 받고 의식을 거행하는 관행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한편, 위생적인 의식과 선행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구겸지는 도교를 보다 정통적인 교리로 확립시킴으로써 많은 추종자를 얻었으며 북위 태무제(太武帝423~452 재위)의 주목을 받았다. 423년 황제의 칙령으로 '천사'로 추대되어, 그뒤 수세대에 걸쳐 끊이지 않고 대를 물려가며 지속된 '도교의 교황'이 되었다. 관료와 공모하여 도교의 최대 경쟁종교인 불교를 나라 밖으로 내몰고 가혹한 박해를 가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도교는 위나라의 국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었을 뿐 불교는 곧바로 중국의 국교로 회복되었고 예전보다 더욱 강해졌다. 또한 흥청거리는 도교의식은 당대(唐代618~907)까지도 계속되어 많은 사람들은 그의 개혁이 일시적인 것이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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